영랑사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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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사는 당진 고대의 채운 들판을 따라 오다 고대 미곡처리장이 있는 한적한 마을 논길로 들어서 오면
끝자락에 보이는 야트막한 영파산(삼선산)의 품에 깃들은 고즈넉한 전통사찰이다.

영랑사의 창건에 관련된 세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당나라 영랑공주가 구법 입당한 의상스님을 만나
신라 원효스님의 오도 이야기를 듣고 감명하여 해동에 불법이 융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옛 백제땅에 주둔해 있는
당 수군의 해상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당군의 주둔항구 근처에 있는 원효스님 오도처에 당승인 아도화상에게 부탁하여
서기664년(신라 문무왕4년)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는 690년경 의상스님이 원효스님의 오도인연이 있는 터에 원효스님 열반후 원효스님을 기리며,
창건하였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고려 개국 공신 복지겸 장군의 딸인 복영랑이 만년에 중병에 걸린 아버님의 쾌유를 발원하여
원효스님의 오도 전설(서기661년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이 두 번째로 해로를 이용해 당나라로 유학을 가기 위해
당 수군의 주둔지이며 당의 군선과 무역선의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옛 백제 땅인 이 지역으로 오던 도중에 날이 저물어
토굴과 무덤에서 각기 하루 밤을 보내다가 마음과 만법의 이치를 깨달음)이 내려오는 공훈으로 하사받은
이 땅에 서기 940년경(고려 태조)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영랑이란 절 이름은 시주자의 이름에 금강경의 여몽환포영의 뜻을 빌어
그림자와 같고 물거품과 같다는 제행무상의 이치를 담고 있다.

그 후 원효스님의 일심화회 사상(모든 교리를 체인 일심으로 통섭하고 방편인 용으로 다양하게 펼쳐진 교리와 수행법은
서로 화합하여 어울려 어긋나지 않고 공존한다는 것)과 무애보살행(사회에 이런 사상을 직접 실현하여 평등속에 차별의 화합 공존을 구현)을
지극히 공경한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서기1091년(고려선종8년)에 중창된 것으로 전해져
언제 누가 창건하였건 창건은 원효스님 오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확실한 역사적 고증은 어렵지만 원효스님의 오도 인연이 서려있는 영랑사는 천 삼백년의 세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여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이루고(자리이타) 더불어
일체의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깨침을 지향하는(자각각타) 도량으로 역사적 부침을 이겨내며 존속되어온
당진에서 가장 오래된 당진 사람들의 정감이 묻어 있는 사찰이다.

문화재로는 충남 도문화재 제15호인 대웅전과 문화재자료 제221호인 동종이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청탑의 기단부와 복발 일부가 발견되어 역사성을 증명하고 있다.

세종 때 제작된 팔도지리지를 근간으로 작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기록된 당진현의 사찰 중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이다.
1760년 간행된 여지도서에도 현의 서쪽 십리 영파산에 있다 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상대면 관동(현 진관리)에 영랑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1750년 제작된 해동지도에는 영파산과 영랑사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발견된 지붕 막새기와의 명문 “강희 17년 무오년”의 내용이 1678년 대웅전 중창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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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사는 당진 고대의 채운 들판을 따라 오다 고대 미곡처리장이 있는 한적한 마을 논길로 들어서 오면 끝자락에 보이는 야트막한 영파산(삼선산)의 품에 깃들은 고즈넉한 전통사찰이다.

영랑사의 창건에 관련된 세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당나라 영랑공주가 구법 입당한 의상스님을 만나 신라 원효스님의 오도 이야기를 듣고 감명하여 해동에 불법이 융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옛 백제땅에 주둔해 있는 당 수군의 해상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당군의 주둔항구 근처에 있는 원효스님 오도처에 당승인 아도화상에게 부탁하여 서기664년(신라 문무왕4년)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는 690년경 의상스님이 원효스님의 오도인연이 있는 터에 원효스님 열반후 원효스님을 기리며, 창건하였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고려 개국 공신 복지겸 장군의 딸인 복영랑이 만년에 중병에 걸린 아버님의 쾌유를 발원하여 원효스님의 오도 전설(서기661년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이 두 번째로 해로를 이용해 당나라로 유학을 가기 위해 당 수군의 주둔지이며 당의 군선과 무역선의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옛 백제 땅인 이 지역으로 오던 도중에 날이 저물어 토굴과 무덤에서 각기 하루 밤을 보내다가 마음과 만법의 이치를 깨달음)이 내려오는 공훈으로 하사받은 이 땅에 서기 940년경(고려 태조)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영랑이란 절 이름은 시주자의 이름에 금강경의 여몽환포영의 뜻을 빌어 그림자와 같고 물거품과 같다는 제행무상의 이치를 담고 있다.

그 후 원효스님의 일심화회 사상(모든 교리를 체인 일심으로 통섭하고 방편인 용으로 다양하게 펼쳐진 교리와 수행법은 서로 화합하여 어울려 어긋나지 않고 공존한다는 것)과 무애보살행(사회에 이런 사상을 직접 실현하여 평등속에 차별의 화합 공존을 구현)을 지극히 공경한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서기1091년(고려선종8년)에 중창된 것으로 전해져 언제 누가 창건하였건 창건은 원효스님 오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확실한 역사적 고증은 어렵지만 원효스님의 오도 인연이 서려있는 영랑사는 천 삼백년의 세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여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이루고(자리이타) 더불어 일체의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깨침을 지향하는(자각각타) 도량으로 역사적 부침을 이겨내며 존속되어온 당진에서 가장 오래된 당진 사람들의 정감이 묻어 있는 사찰이다.

문화재로는 충남 도문화재 제15호인 대웅전과 문화재자료 제221호인 동종이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청탑의 기단부와 복발 일부가 발견되어 역사성을 증명하고 있다.

세종 때 제작된 팔도지리지를 근간으로 작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기록된 당진현의 사찰 중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이다.
1760년 간행된 여지도서에도 현의 서쪽 십리 영파산에 있다 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상대면 관동(현 진관리)에 영랑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1750년 제작된 해동지도에는 영파산과 영랑사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발견된 지붕 막새기와의 명문 “강희 17년 무오년”의 내용이 1678년 대웅전 중창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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